적당히
2007.06.03어제는 잠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. 욕심이 지나쳐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려 한 탓이었습니다. 결국, 내게 돌아온 것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지나간 버린 하루, 근사한 한 끼의 저녁 식사 값, 그리고 색색으로 단장한 이틀 치의 약들이었습니다.
예전에는 병원을 참 좋아했습니다. 문을 들어설 때의 그 알싸한 알코올 향은 내게 청량제가 되어주었고, 병원마크로 물들인 그 옷은 명품처럼 고급스러워 보였습니다. 그러나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, 결석에 대한 면죄부를 준다는 것이었습니다. 물론, 그 시간에 아픔과 씨름하다 약을 먹고 잠들어 있었겠지만요.
병원이 싫어지기 시작한 때가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. 아마도 할머니 장례식에서 맡은 병원냄새의 근원이 죽음임을 해독한 때라고 해야 할까요? 그 냄새는 ‘죽음은 늘 우리 곁에 있다’라고 속삭였습니다. 그 이후로 병원을 자주 찾지 않았습니다. 성인이 되어서 면역력이 강해진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, 이제는 죽음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.
잠시나마 병상에 누워 떨어지는 링거액 방울을 세면서 잠을 청해보았습니다.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건, 아픔은 둘째치고 긴 잠을 자게 되지 않을까라는 말도 되지 않는 걱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. 물론, 도착하기 전에는 혹시 심각한 병에 걸린 건 아닐까, 더욱더 큰 걱정을 하기도 했었지만요.
지금은 괜찮습니다. 어젯밤의 아픔이 TV 속 드라마처럼 아무렇지 않아 오히려 미안할 정도입니다. ‘적당히’, 성공 앞에 어울리지 않는 이 말이 우리 몸에는 더욱 어울린다는 것을, 나는 빈번히 잊고 지냅니다.